1.   대 웅 전


천축사 대웅전은 천축사의 주법당으로, 1812년에 건립된 ㄷ자형 팔작건물을 현공(玄公)스님이 2004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신축하였다.
대웅전은 연화초석 위로 두리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 다포를 얹은 모습으로 내외 2ㆍ3출목의 다포를 가지며, 특히 어칸에는 용두를 장식하고 있어 주법당으로서 웅장한 규모를 보여준다.
전면에 2ㆍ3ㆍ4분합의 꽃살창호를 단장하고 현공(玄公)스님이 쓴 편액과 주련을 달았다.
건물 내부는 우물마루 위로 ㄷ자형으로 형성된 불단을 가설하였는데, 불단 위에는 중앙에 석가ㆍ문수ㆍ보현보살을 중심으로 지장보살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불화로는 2004년에 조성된 석가모니후불탱과 지장탱ㆍ신중탱이 걸려 있다.
이외 불구로는 1971년에 조성된 금구와 불단 우측으로 영단이 가설되어 있다.

도봉산 천축사 대웅전 주련


주련(柱聯)이란


사찰 기둥이나 벽 따위에 쓰여 있는 글귀를 가리킨다.

그런데 대부분 한자로 쓰인 데다 흘려 쓴 경우가 많아 무심코 지나치기 십상이다.

-六和敬行 - 여섯가지 화합을 이루는데는 공경을 바탕으로 -

북송(北宋)시대 이름난 선사( 禪師)였던 장로자각 (長蘆慈覺)의 구경문(龜鏡文)에 여섯가지 화합과 공경, 즉 육화경문(六和敬文)이 나오는데 도봉산 천축사의 대웅전 주련에 쓰여 있다.

여기에서 구경(龜鏡)이란  거북은 그것으로써 예측을 결정하며, 거울은 그것으로써 예쁘고 추함을 판단한다는 의미이다.

이 주련의 문장은 지리산 쌍계사 적묵당의 주련이기도 하다.


쌍계사 적묵당은 저유명한 최치원의 사산비명(四山碑銘)중의 하나인 진감선사의 부도탑비가 적묵당 건물의 앞에 서 있어, 남 북으로 나란히 서 있는 건물이다.

또한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 4동 혜원정사(慧苑精舍) 육화전(六和殿)의 기둥에 똑같은 주련이 걸려있다.

如是行者能得道(여시행자능득도) 이렇게 행함으로 능히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여섯가지 화합을 이루려면 공경으로 부터 해야 한다는 천축사 대웅전의 육화경문(六和敬文) 주련은 왼편으로부터 아래와 같이 적혀 있다.


▣ 身和同住用身一(신화동주용신일) - 화합하는 몸으로 함께 머무니 한 몸처럼 쓰이고,

▣ 口和無諍同口說(구화무쟁동구설) - 화합하는 입으로 다툼이 없으니 한 입처럼 말하고,

▣ 意和無違一心行(의화무위일심행) – 화합하는 뜻으로 어긋남이 없으니 한 마음으로 행하고,

▣ 見和同解無等觀(견화동해무등관) - 화합하여 견해를 한가지로 풀어가니 차별 없이 새상을 보고.

▣ 戒和同遵眞修行(계화동준진수행) - 화합하여 계법을 한 가지로 좇차 가니 참된 수행일새.

▣ 利和同均心平等(이화동균심평등) - 화합하여 이익을 함께 나누니 차별 없이 고른 마음이라네.


번역에 德田.


◐ 이 주련을 분석적으로 쉽게 표현하자면

첫째,   몸으로는 부처님처럼 수행하여 화합하고 (신화경 身和敬),
둘째, 입으로는 부처님 말을 하여 화합하고 (구화경 口和敬),
셋째, 뜻으로 부처님과 같은 생각을 하여 화합하고 (의화경 意和敬),
넷째, 율법을 서로 지켜 바른 행동을 하여 화합하고 (계화경 戒和敬),
다섯째, 바른 견해를 가져 화합하고 (견화경 見和敬),
여섯째, 이익을 고르게 나눔에 충실하여 화합하라 (이화경 利和敬). 는 의미이며,


◐ 육화경행(六和敬行)의 실천을 구체화 하여 표현 한다면,
첫째, 신화공주(身和共住)- 몸으로는 화합하여 같이 살아 가고.
둘째, 구화무쟁(口和無諍) - 입으로는 화합하여 다투지 말며,
셋째, 의화동사 (意和同事) - 뜻으로 화합해 함께 일하고.
넷째, 계화동수(戒和同修) - 계율로 화합 하여 같이 수행하며.
다섯째, 견화동해(見和同解) - 바른 견해로 화합하여 같이 해탈하고.
여섯째, 이화동균(利和同均) - 이익을 균등히 나누어 마음을 고르게 하라.

如是行者能得道(여시행자능득도) 이렇게 행함으로 능히 득도(得道)하리라.

득도(得道)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 장로 자각 (長蘆 慈覺 1009-1092) 선사의 생애(生涯)

장로 자각 (長蘆 慈覺)선사는 북송시대 낙주(洛州) 양양(襄養) 출신(出身)으로 속성(俗姓)이 손씨(孫氏)이고 이름은 종색(宗賾)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偏母 膝下)에서 자라 젊었을 때는 유교(儒敎) 공부에 몰두(沒頭)한 적이 있으나 29세 때 원통 법수(圓通 法秀)에게 출가(出家)하고 장로 응부(長蘆 應夫)의 법(法)을 이었는데, 어머니를 방장(方丈)의 동실(東室)에 모시고 봉양(奉養)하며 부지런히 염불(念佛)에 정진(精進)하던 종색(宗賾)은 만년(晩年)에는 연사(緣社)를 맺어 정법(淨法)을 닦았다고 전해 온다.


◐ 장로 자각 (長蘆 慈覺) 선사의 사상(思想)

장로 자각 (長蘆 慈覺)선사는 운문종(雲門宗) 계열(系列)이면서 동시에 정토사상(淨土思想)의 선봉자(先鋒者)이기도 한데, 원래 선종(禪宗)과 정토사상(淨土思想)은 서로 융합(融合)되기 어려운 상반(相反)된 논리구조(論理構造)를 가지고 있어 종색(宗賾)의 이런 자세(姿勢)를 이해(理解)하기가 어렵지만, 종색(宗賾)은 서방정토(西方淨土)를 이상적(理想的) 미래 세계(未來 世界)가 아닌 눈앞의 현실(現實)로, 또한 염불(念佛)을 아미타불(阿彌陀佛)을 구(求)하는 기도(祈禱)가 아닌 원력(願力)의 수행(修行)으로 해석(解釋)함으로써 절묘(絶妙)하게 융합(融合)시켰던 것이다.

이를 좀더 쉽게 설명(說明)하자면 먼저 선(禪)의 요체(要諦)는 ‘견성(見性)’으로 자신(自身)의 철저(徹底)한 노력(努力)을 통해 내 안에 있는 가능성(可能性)을 확인해가는 길인 반면, 정토사상(淨土思想)은 서방정토(西方淨土)에 왕생(往生)하려면 극락교주(極樂敎主)인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지심(至心)으로 염불(念佛)해야만 한다는 타력신앙(他力信仰)의 전형(典型)이다.

하지만 종색(宗賾)은 이 자력(自力)과 타력(他力)을 융합적(融合的)으로 이해(理解)함으로써 정토(淨土)를 이상적(理想的) 미래 세계(未來 世界)로 생각지 않고 오히려 눈앞의 현실(現實)로 규정(規定)하는 한편, 이 정토(淨土)를 현실(現實) 속에서 구현(具顯)하려면 내 스스로의 자각(自覺)이 필요(必要)함을 역설(力說)하였는데, 이렇게 되면 염불(念佛)은 아미타불(阿彌陀佛)을 구하는 외부적 기도(外部的 祈禱)가 아니라 현실(現實)을 정토(淨土)로 가꾸려는 원력(願力)의 수행(修行)이 되는 것이었다.


◐ 장로 자각 (長蘆 慈覺) 선사의 우리 불교에 미친 영향(影響)

장로 자각 (長蘆 慈覺)선사의 이런 자세(姿勢)는 고려 불교(高麗 佛敎)에도 지대(至大)한 영향(影響)을 미쳐 고려 말엽(高麗 末葉)의 대표적 선승(代表的 禪僧)이었던 태고 보우(太古 普遇 : 1301~1382)․백운 경한(白雲 景閑 : 1298~1374)․나옹 혜근(懶翁 慧勤 : 1320~1376) 등은 철저(徹底)한 선정융합적(禪淨融合的) 경향(傾向)을 보였다.


◐ 장로 자각 (長蘆 慈覺) 선사의 힘써 지은 저술『선원청규(禪苑淸規)』

장로 자각 (長蘆 慈覺)선사는 1103년에『선원청규(禪苑淸規)』10권을 지었는데, 『선원청규(禪苑淸規)』라는 책 제목은 글자 그대로 참선하는 도량의 맑은 규칙이라는 뜻이다. 이 책은 원래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는 백장청규(百丈淸規)를 효시(嚆矢)로 하여 만들어진 이 책은 승단(僧團)의 규율(規律)․출가자(出家者)로서의 몸가짐․마음 씀씀이 등을 담고 있어 아직까지 한국 불교(韓國 佛敎)의 실천적(實踐的) 수행(修行)이 되는 중요한 저술(著述)로 남아 있다.

철저(徹底)한 자력 신행(自力 信行)을 강조한 선종(禪宗)은 의식주(衣食住)까지도 자급자족(自給自足)을 원칙(原則)으로 함으로써 왕실(王室)의 비호(庇護) 속에 성장(成長)하던 교종(敎宗)에 대한 강력(强力)한 비판 의지(批判 意志)를 담고 있었지만, 송대(宋代)에 들어서면서 청규(淸規)가 유명무실(有名無實)해지자, 그 폐단(弊端)을 바로잡기 위해 종색(宗賾)이 새로운 청규(淸規)를 만든 것으로 백장 회해(百丈 懷海) 이후 3백여 년만의 일이었다.

 『선원청규(禪苑淸規)』는 원(元)나라 때 만들어진『칙수백장청규(勅修百丈淸規)』와 함께 ‘2대 청규(二大 淸規)’로 꼽히지만 내용(內容)에서는 현저(顯著)한 차이(差異)가 있는데, 전자(前者)는 초세속(超世俗)․초권력(超權力) 등을 강조한 반면. 후자(後者)는 국왕(國王)에 대한 예우(禮遇) 등 주로 사은(四恩)을 강조(强調)해 다분히 세속적(世俗的)인 청규(淸規)의 단면(斷面)을 보이고 있다. [출처] 도봉산 천축사 대웅전 주련|작성자 영원속으로